라이프로그


심학산 산악트레킹


심학산에서 산악 트레킹을 했다.
동아마라톤 대회 준비 프로그램으로 당분간 주말에는 산악트레킹으로 다리 근력을 키우는 것으로 훈련하려 한다.
심학산 둘레 길이는 약 6km이다.
오늘은 10km를 달렸다.
둘레길은 푹신 푹신하며 돌도 거의 없었으며 낙엽들도 적절히 떨어져 있는 상태로 달리는데는 최적의 장소였다.
단 갈만한 경기도 둘레길 코스로 홍보 되어 있어, 인파가 8시15분경에 시작했으나 점점 늘어나 달리는데는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다.
다음에는 30분정도 앞당겨 달려야 겠다.
오늘도 약간 몸이 덜 풀린 듯했다.
완전 몸이 풀리는데는 약 일주정도는 걸릴거 같다.
풀린 근력과 체중을 좀 줄이면 예전처럼 달릴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열심히 열심히...

2011년 동아마라톤 대회 준비 시작! 마라톤 일지

2010년 11월 17일

2011년 동아마라톤 대회 준비 시작!

퇴근후 상암 하늘공원에서 약 5km를 달렸다.
트랙 5바퀴, 언덕치기 200m왕복 7회

달리는 자세를 잃어 버렸다. 몸에 감각을 되살려야 되는 것이 시급한 문제인 듯 하다.
온몸이 삐걱삐걱 거렸다.
몸도 넘 무겁고...

이제 식단관리에 신경을 써야 겠다.
짠거, 단거 완전 사절!
고기는 가급적 줄이기, 채소류 많이 먹기..

일주 3회 이상 운동
주말 30km이상 달리기
주중 10km 달리기....
동아 마라톤 대회 목표 기록 4시간 30분

국망봉을 다녀오다 여행


2010년 11월 13일 토요일 국망봉을 다녀왔다.
업계 대표님들 모임에서 가는 산행이었다.
아침 8시에 합정역에 모여 경기도 포천으로 향했다. 차가 막혀 약 3시간 정도 걸려서 도착했다.
크리스탈 생수공장을 지나 포천 휴양림(?)을 통과해서 산행을 하게 된다.
총 참석 인원은 25명, 60세 이상의 어르신도 계셨고 초등학교 2학년 학생도 있었다.
역시 깊은 가을이라 그런지 낙엽들이 데굴데굴 굴러 다녔고, 약간의 냉기도 느껴졌다.
골짜기를 타고 올라 해발 1,168.1M의 국망봉을 오르게 된다.
11시 산행을 시작 정상에 2시30분경 도착(국망봉 바로전 봉우리에서 간단한 중식), 바로 하산.. 지상에 내려온 시간은 5시 30분..다른 일행들은 챙겨야 되는 분들이 많아 7시30분경에 지상에 도착하게 된다.
어둠속 산행이라 다들 겁을 상당히 먹었을 듯 하다. 사실 부상자가 생기지 않을까 혼자 가슴 졸이며 내려왔다...남이 알아주든 말든;;
나름 산행에 길들여 있는 나조차도 어둠이 두려웠었고, 낙엽이 발등위까지 쌓여 있어, 밟는 것이 돌인지 계단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하산길 약 5,5km는 정말이지 넘 고됬었다. 즐길수가 없는 산행이었다. 잘못하다가는 발목이 나갈 수도 있는 상황이어서 긴장감 100%인 상태로 하산을 하다보니..막바지 약 2km는 무릅 아래는 영 움직여지질 않는 상태로 어기적 어기적 내려왔다.
초창기 마라톤 배울때 강훈련 했을 당시와 거의 같은 느낌이었다.
포기할 수도 없고...
아무도 나를 챙겨 줄수 없는 상황이었고..

국망봉은 경기도의 지리산이라고 불리어진다고 한다.
코스를 잘못 잡아서 그렇지 능선을 타고 걸으면 지리산과 같은 느낌을 충분히 받을 수 있을거 같다.
경기도 소재의 산이지만 지리산의 깊이를 약간은 흉내내는 정도로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지리산 특유의 땅의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언제 시간이 된다면 다시 시도 능선을 처음부터 끝까지 걷고 싶다...
힘들었지만 색다른 산행이었고,
그동안 맛보지 못한 산의 정기를 느낄 수 있었다.







시민 혁명 책과 독서의 문화사


시민혁명
시민혁명/박윤덕/156면/책세상
2010년 10월 25일

박윤덕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파리 1대학 프랑스혁명사연구소에서
<제헌국민의회 시기의 농촌소요와 농민운동, 1789~1791>이라는 논문으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충남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프랑스 혁명사 및 근대 유럽의 농촌사 등을 연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프랑스 구체제의 권력구조와 사회>(공저), 옮긴 책으로 <혁명의 탄생>등이 있으며, <프랑스혁명 초기 농민운동의 성격>,<농촌공동체와 농민혁명-1789년 7월 마코네Maconnais 지방의 농촌폭동 사례 연구>,<민중의 "도덕경제"와 식량폭동-18세기 말 프랑스의 경우>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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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대사의 기점, 시민혁명에 다시 주목하다

보편적 가치로서의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제시하고 이를 구현할 수 있는 공화정을 수립한, 근대사의 기점인 시민 혁명은 서구의 독특한 역사적 경험으로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다. 그러나 근대 이후 비유럽 세계가 서양을 모델로 삼아온 만큼 시민 혁명의 전 세계적 영향력을 부정할 수 없다. 3.1만세운동, 4.19학생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6.10민주 항쟁 등 우리의 현대사 역시 서양의 혁명 전통을 이어 받으려는 노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를 겪은 우리는 서구의 일부 국가들이 시민 혁명 끝에 맞이한 자유와 평등, 그리고 민주주의의 혜택을 온전히 누리고 있는가?
이 책은 16세기 후반 네덜란드 반란부터 18세기 후반 프랑스 혁명까지 200여년 동안 유럽을 요동치게 한 시민 혁명을 개념적으로 정리한다.
근대적 의미의 혁명은 네 가지 요소를 함축하고 있다.
첫째, 혁명은 기존 체제와의 단절이라고 느껴질 만큼 급격한 '변화'여야 한다.
둘째, 혁명은 지배자에 대항하는 피지배자의 폭력을 수반한다.
셋째, 혁명은 이념과 원칙의 명분을 제시해야 한다.
넷째, 혁명은 불가항력의 거대한 움직임으로 역사의 필연성을 띤다.
혁명은 왜 일어나는가? 마르크스의 말처럼 혁명은 역사 발전의 일정한 단계에서 일어나는 '필연적'운동이며 불가항력적인 사건인가? 시민 혁명의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각기 다른 시공간에서 벌어진 여러 혁명의 기원을 고유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추적해야 한다.
이 책은 시민 혁명들을 기존 정치 체제의 성격, 혁명 전야의 사회경제적 상태, 혁명 주도 세력의 구성과 이념을 중심으로 살펴보며 민주주의 이념인 자유와 평등의 사상은 어떻게 탄생하고 발전했는지, 그 시민 혁명과 오늘이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고찰한다.

2. 시민 혁명은 어떻게 일어났나
시민 혁명은 근대 국가의 형성.발전 과정에서 기존 체제가 경험한 성공과 실패가 빚어낸 역설의 산물이다. 잉글랜드 튜더 왕조의 국가재정 부실, 수많은 전쟁 끝에 루이 14세를 향한 신민들의 원한, 의회를 무시한 찰스 1세의 전단적 통치 등 세습 군주를 향한 불만이 혁명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전쟁의 승패와 상관없이 각국의 군주들은 상비군 유지와 전비를 마련하기 위해 혹독한 조세를 징수하고, 심지어 프랑스 국왕은 신민을 상대로 관직을 매매했는데, 이 매입한 관직은 상속 및 되팔기가 가능했다. 이렇게 귀족이 된 법복 귀족이 왕권의 통제를 벗어난 엘리트 관료 집단을 형성하는데, 이들이 프랑스 혁명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이 책은 미국의 역사가 브린턴의 혁명 단계를 바탕으로 잉글랜드 혁명, 아메리카 혁명, 프랑스 혁명의 과정을 살펴보며 그의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을 채워 넣는다.

3. '부르주아 혁명'또는 '시민 혁명'
'시민 혁명'은 '부르주아 혁명'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시민과 부르주아 두 단어의 역사적 의미 변화 및 개념상의 괴리, 실제와의 부합 여부 등을 고려할 때 언어의 이면을 섬세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샤토브리앙의 "혁명은 귀족이 시작해서 평민이 끝냈다"는 말처럼 시민 혁명을 일으킨 주체와 주체와 혁명의 혜택을 입은 계급, 그리고 부르주아라는 개념의 변화를 생각해보면 '시민 혁명=부르주아 혁명'의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이 책에 따르면 혁명은 권력 내부의 갈등에서 비롯되어 권력에서 배재되었던 신흥 계급의 주도로 공공연한 반란으로 발전한 뒤 민중의 개입으로 성취된다. 근대 자본주의 발전사를 이해하고 현대 자본주의 세계를 파악하는데 부르주아라는 개념은 여전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부르주아와 시민은 처음에는 같았으나 점차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11세기에 처음 등장한 '부르주아'의 어원은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이었다. 훗날 이 단어는 '도시의 부자 상공업자'를 칭하다 산업 혁명 후에는 '자본가'를 뜻하게 되었다. '시민'은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시작해 이제는 '시민적 권리를 누리는 국가의 구성체'를 뜻한다.
부르주아 개념을 어떻게 설정하고 역사 발전의 큰 틀에서 시민 혁명의 의의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시민 혁명에 대한 해석이 달라진다.

4. 시민 혁명과 오늘날의 민주주의
토크빌은 '개혁을 시도할 때가 체제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는 말을 했다. 혁명전의 위기는 근본적으로 권위의 위기이다.
프랑스 혁명의 발발은 시민의 불만, 사회적 위기, 정치적 불안을 저변에 깔고 있지만 이것만으로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정치적 무능 상황을 극복할 새로운 이념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유토피아를 향한 열망과 계몽사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민중은 정치적.사회적 권리를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었다.
세계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문서인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은 자유와 평등과 시민 사회의 구성 원리를 잘 담았다. 로크, 몽테스키외, 루소, 볼테르를 비롯하여 중농주의 소유권의 신성불가침등 유럽 계몽 철학자들의 사상과 이념이 응축되어 있었고, 영국의 권리 장전과 미국의 독립 선언, 1780년대 네덜란드 애국파 운동의 선언들에 나타난 정치 이념과 원리들도 녹아 있다. 
혁명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는 소수 혁명가의 기획이 아니라 폭발하는 민중의 역동성이다. 지은이는 장막으로 가린 기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할 때만 실현되는 '암실의 민주주의'가 오늘날 민주주의의 한계라면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이 말하는 자유와 평등의 혁명 이념과 시민 사회의 구성 원리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은 프랑스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문서로서, 자유와 평등의 혁명 이념과 시민 사회의 구성 원리를 담고 있다. 전문과 17개 조항으로 구성된 이 선언은 자유, 소유, 안전 및 압제에 대한 저항이 소멸되지 않는 인간의 자연권이고, 모든 정치격 결사는 이러한 인간의 권리를 보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선언하면서(제2조), 국민 주권(제3조), 권력 분립(제16조),법 앞에서의 평등(제6조)과 조세 평등(제13조),죄형법정주의(제8조)와 무죄 추정의 원칙(제9조)을 천명했다. 또한 신체의 자유와 함께 양심의 자유(제10조)와 언론.출판의 자유(제11조)를 인간의 가장 소중한 권리 가운데 하나로 제시하면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자유의 남용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명시했다. 마지막으로 소유권은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공공의 필요성에 의해 요구되는 경우가 아니면, 그리고 사전에 정당한 보상을 하지 않고는 이를 침해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어지는 내용

화엄사 여행

2008년 12월 18일 화엄사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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